Q. 시와 1집 [소요 逍遙]의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네~ 그럼 앨범에 실린 순서대로 첫 곡부터! (딱딱한 말투로 쓰겠습니다.)

01 작은 씨
어느 봄에 다리를 다쳐서 꼼짝 못하고 한달이 넘게 집에만 있어야 했던 적이 있다. 마침 그즈음 누군가에게 받은 씨앗이 있었는데, 이렇게 조그만게 무언가로 자라기나 할까 의심하는 마음으로, 화분에 심어두고 물을 주니 며칠 새에 싹이 올라오더라. 정말 놀라웠다. 매일매일 그 녀석을 지켜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집에만 있으니 기분도 많이 가라앉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질 때였는데 작은 씨에서 돋아난 새싹이 나를 격려해주었다. '봐라. 나는 흙과 물과 햇빛만 있어도 이렇게 잘 자라고 이쁘지 않니. 우리 모두는 아무 것 없어도 꾸미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멋진 존재라구.'라고 말하는 듯.
앨범에 실린 이 곡의 끝부분에 예쁘게 속삭이는 효과는 지은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가능해졌다.

02 dream
독일의 '보덴제'라는 큰 호수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호수가의 돌로 만든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기타를 치다가 떠오른 멜로디로 그 자리에서 완성해 낸 곡이다. 가사와 정확히 똑같이 출렁이는 물소리가 들리고 물 위의 반짝이는 빛의 조각들이 보였다. 머리 위에 있는 따뜻한 햇살은 내 몸 가장 안쪽 어두운 부분까지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 했다.
그 벤치에 한시간 여를 앉아서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며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옆에서 다 듣고 있던 사람(아마도 독일인)이 뮤지션이냐고 묻고는 멋진 노래 잘 들었다며, 계속 열심히 하라고 5유로를 주고 갔다

03 랄랄라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를 참 좋아한다. 이 곡도 어느 따뜻한 날 길상사의 풍경을 바라보며 만들었다. 그 곳은 매우 고요한 곳이다. 발소리를 내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잎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다. 돌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반대쪽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뭔가를 발견한 마음이 들었고 거기서 가사와 멜로디를 바로 만들 수 있었다. 악기는 없었지만 갖고있는 음감을 최대한 활용해서 수첩에 계이름과 가사를 적어 떠오른 멜로디를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시와 EP [시와,]에도 실린 곡. 당시 앨범에는 보너스 트랙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녹음해서 실었으나 다시 잘 녹음해서 발표하고싶다는 생각에 이번 앨범에도 넣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와 함께 내가 서툴게 분 오카리나 소리가 들어있다!

04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
어느 날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들어 울컥했던 적이 있었다. 왈칵 눈물도 흘렸는데. 아마도 감동적인 공연을 보여 준 그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쓸쓸히 돌아서고 싶지 않았나보다. 말한마디 못 건네고 집에 돌아와서는 곡을 썼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앨범에는 피아노와 첼로의 연주에 노래를 불렀다.

05 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
아주아주 친밀한 친구가 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아이에게 하지 못한 마음 속 이야기가 있었다. 왜였을까. 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을까. 머리속에 맴돌고 입술위에서 달싹이는, 그 친구를 위한 말은 많았지만 한번도 입밖에 내어 본 적이 없었다.

06 잘 가, 봄
봄이 오면 우울해지곤 했다. 춥고 햇빛이 줄어든 겨울을 보내고 난 후 찾아오는 봄은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았다. 예쁘게 핀 벚꽃을 보며 시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벚꽃이 지고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다시 나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노래가사의 '안녕 지는 꽃들아'에는 '바이바이 잘가~ 꽃들아'의 감정을 '안녕 피는 잎들아'에는 '정말 반갑다!! 잎들아'라는 감정을 실었다.
녹음의 가장 마지막 날에 보컬 녹음을 했던 곡인데 지은이 듣고선 '언니 축하해유 시와 보컬 stage 2로 가셨구랴.' 노래를 잘했다는 칭찬, 이번 작업중에 들었던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다.

07 하늘공원
독일 여행에서 얻은 또 하나의 곡. 독일의 튀빙겐에 며칠을 묵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초록빛 언덕을 발견했다. 자전거를 언덕아래 벤치에 묶어두고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윈도우의 기본 바탕화면 중 하나인 파란하늘+흰구름+초록언덕과 아주 똑같았고(제 상상력이 빈약한가요 ^^;), 발 아래에는 이름 모를 여러 풀과 들꽃들이 빛나고 있었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다시 오르는데 그 촉감이 정말... 그렇게 폭신할 수가 없었다. 풀이 아닌 흙을 디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흙 풀 들꽃 나무 하늘 모두 너무 고마워요.'
이 곡은 기타 스트로크를 녹음할때 왼손가락의 운지가 어려워서 첫 녹음에 고전하다가 엔지니어님의 조언에 따라 며칠 더 연습하고서 만족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08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때
한겨레 신문에 우리작가 공지영과 일본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으로 연재하던 소설이 있었다. 먼 하늘 가까운 바다(후에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됨)라는 소설이었는데 그걸 읽다가 마음에 쿵하고 다가오는 구절이 있었다. 그 때 내가 고민하고 혼란스러워 했던 부분을 잘 이겨내도록 힘을 주는 문장이었다. 그것에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었다. (공지영님께 혹시나 누가될까봐 녹음전에 정중한 메일을 드렸었는데-그 후에도 여러 번- 수신확인은 되었으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장편집필중이라고 했다. 누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EP 앨범을 프로듀스했던 SODA(oldfish)가 프로그래밍으로 리듬루프를 만들어줬고, 그위에 드럼 베이스 일렉기타 피아노 어쿠스틱기타를 얹었다. 다른 분들께는 어떻게 들릴까 궁금한 곡이다.
2010년 2월 7일 공지영님꼐 답장을 받았다! '가사 잘 쓰셨네요 그대로 쓰세요'라는 글과 함께. 기쁘다!

09 화양연화
이 노래를 만들 때는 정말 슬펐었다. 떠나 보내야하는 시절에 대한 슬픔이 가장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떠나보낸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잘 떠나 보내야 또 다른 화양연화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2007년 빵컴필레이션 3집에 실린 '화양연화'와 시와 1집의'화양연화'는 다르게 들릴 수 있을까.

10 american alley
여성사박물관의 전시 오프닝 공연을 하는 자리에서 만난 김동령감독. 현재 동두천에서 일하는 여성 네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를 편집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음악을 맡아줄 사람을 오래도록 찾고 있었는데 오늘 시와의 음악을 들으니 부탁하고 싶어졌다며 영화음악을 작곡해줄 것을 제안했다. 감독과 나 양쪽의 마음에 드는 완성도 있는 곡을 만드느라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었는데 그렇기에 지금의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영화 속의 네명의 여성이 다들 순탄치 않은 삶을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계속해서 살아내려는 의지를 담고자 한 엔딩타이틀곡 'american alley'를 시와 1집에도 싣는다.(american alley는 부산영화제에 프리미어 상영된 이후 일본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오가와신스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더 풍성하고 넘실대는 느낌을 살려보려고 후반에 화성을 쌓아보았다. 지은의 제안 덕에 뿌듯해진 트랙.

11 굿나잇
신촌에서 동교동 로터리로 가는 길에 커다랗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그 큰 은행나무를 보면서 매번 같이 감탄하던 이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나무도 베어지고 없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슬픈 감정을 담은 곡이고, 프로듀서 지은도 단번에 오케이한 원테이크 완성곡이기도 하다.

12 bonus track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 guitar ver.
지은의 말을 빌리면 이번 앨범은 내가 쓴 각본에 직접 연기를 하면서 새로운 감독을 맞이한 영화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면에서 평소 공연때에 하지 못했던 악기 편성과 편곡을 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연을 같이 해 온 rainbow99와 연주하던 분위기를 다 흡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아쉬운 부분을 살리고 싶은 마음과, 앨범을 듣는 분들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아주작게만 보이더라도의 guitar version을 보너스트랙으로 만들어 넣었다.rainbow99의 아련한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다. 이 곡의 녹음과 믹싱은 SODA(oldfish)와 함께했다. 이 버전은 초도음반한정 트랙이라는 점 기억해주세요!



에휴. 숨가쁘죠? 내용이 좀 많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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